'효재의길' 조성해야
여성운동의 한 획을 그었던 이이효재 선생을 기리는 ‘효재의길’을 조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역내 사회단체 중심으로 일고 있다. 이이효재 선생은 한국에서 최초로 여성학을 설치하였고 유엔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알려 국제적 공론화를 이끌었다. 또한 호부재 폐지와 성매매방지특별법법을 만드는 데 앞장섬으로 가부장적인 사회와 정면으로 맞선 인물이다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후에는 고행인 진해에 내려와서 가족연구에 매진하고, ‘사회복지연구소”를 설립하여 여성 및 아동, 청소년 관련 시책을 제안하는 등 여성운동의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였으며, 진해 기적의도서관, 장난감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마들이 사회운동의 주체로 자리잡게 했다.
이이효재 선생은 우리 창원시는 물론 진해구의 자랑이다, 그러기에 서울 서대문구에서 “여성 친화 퇴마길’을 조성했둣이, 진해구에서도 이이효재 선생을 기리는 ‘효재의길’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 사진 : 청와대)
다음은 이종화 민주당 창원시의원 5분발언 전문 및 바다와 관련된 여행의 소회를 담은 내용이다.
- 창원시의회 5분 자유발언 (2020.08.16)-
반갑습니다.
문화환경도시위원회 이종화입니다.
본 의원은 우리나라 여성사와 민주화 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이이효재 선생을 기리는 ‘효재의 길’조성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효재의 길’조성을 통해, 창원시민에게는 자랑스러운 여성 지도자의 도시라는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사회적 지식들을 제공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이효재 선생의 삶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해방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콜롬비아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고 모교인 이화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쳤습니다. 행동하는 지식인 이이효재 선생님, 그는 재직 중에는 최초로 여성학을 설치하였으며 유엔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일본군의 파렴치한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려 국제적 공론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1980년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련되어 3년 동안 해직되었으며 복직 후에는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방지특별법을 만드는데 앞장서는 등 독재라는 야만의 시대, 가부장적인 사회와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정년퇴직 후에는 고향인 진해에 내려와서 마지막 연구 과제로 설정했던 가족연구에 매진하며 ‘사회복지연구소’를 설립하여 지역의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여성 및 아동·청소년 관련 시책을 제안하는 등 여성운동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여성이라는 화두를 인간으로 바꾸어 생명에 대한 존경과 사랑, 자유·정의·인권의 가치에서 남녀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여성운동에서 배제되었던 엄마와 아이, 가족이 함께 열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선생님이 주도하셨던 진해기적의도서관과 장난감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마들이 사회운동의 주체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여성이 여성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엄마들의 참여와 연대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임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건강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게 했습니다.
물론 이이효재 선생님 외에도 우리 시에는 여성 선구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성 독립운동가이신 김명시, 김조이 선생님 그리고 소설가 지하련 선생님과 시인 박서영 김혜영 선생님, 무용가 이필이 선생님 등은 우리 시의 큰 자랑이십니다. 차제에는 서울 서대문구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 시민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서대문구에서는 관내의 안산 자락에‘여성을 기억하는 길’이라는 의미의‘여기로’라는 여성 친화 테마길을 조성하고 그곳에 명명한 여성들의 스토리보드를 설치하여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허성무 시장님 그리고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남에게 들내기를 극히 꺼리셔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여성들의 의식 변화를 들불처럼 번지게 해주신 선생님의 연세가 올해 97세이십니다. 지금도 멘토가 되어 그윽이 바라봐 주시기에 새로운 힘을 얻으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의 참 스승이셨습니다. 이제는 그 분을 자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효재 선생과 바다 -
늘 바다를 곁에 두고 살면서도 바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수평선이 하늘과 맞닿는 바다를 보고 싶은 것이다. 꼭 마음이 울적해서가 아니라도 바다를 바라보며 그 싱그러운 소금맛 냄새를 맡고 싶을 때가 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은 갯가를 찾아 나선다. 속천도 가고 용원도 가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바다는 오밀조밀한 해안선에 작은 섬들이 연달아 시야를 막는다. 거기다 최근에는‘속천항 개발’그리고‘부산․진해 신항만’건설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크레인과 같은 중장비들이 우람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찾아갔다가 심호흡은커녕 더 졸아붙는 듯한 심장을 안고 발길을 돌린다. 그럴 때마다 동해 바다가 몹시 그리웠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겹쳐서 이효재 선생님을 모시고 동해의 드넓은 바다 대신 해운대 앞 바다를 찾았다. 엷은 초록색 물빛이 점점 짙어지더니 검푸른 색이 되어 하늘과의 경계를 긋는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아침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수평선 위로 하얀 파도가 갖가지 수를 놓으며 찰랑댄다. 그지없이 평화롭고 잔잔한 풍경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저 고요함은 내면에서의 무서운 소용돌이를 억누르고 감싸안는 너그러움에서만이 표현되는 것일 게다. 그래서 보일 듯 말 듯 완만하게 그려지는 수면의 저 곡선이 더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겠다.
문득 ‘바다는 입으로 말하는 자가 아니라 일로 말하는 자요. 말로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몸으로 가르치는 자라 한 번 대하여 보면 큰 감화를 받지 아닐 이 없으리라.’는 최남선 선생의 말이 생각나서 곁에 계시는 선생님을 돌아본다.
선생님도 어제 저녁부터 바다에 취한 듯 말이 없으시다. 선생님과 나는 어제 저녁에 해안선을 따라 달맞이 고개를 돌아 올 때에도, 깜깜한 밤바다를 몇 시간이나 내려다 볼 때에도 또 이렇게 황홀한 아침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굳이 어떤 의미를 담기보다는 마음을, 머릿속을 비운 채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팔순의 연세에도 풋풋한 감성의 삶을 엮으시는 선생님을 또 한 번 새롭게 발견한다. 이효재 선생님과 교분을 맺은 지 10년이 되어간다. 내가 서울에서 진해로 내려온 1997년 그 무렵 선생님께서는 정년퇴직 후 고향에 머물고 계시는 터였다. 뒤돌아 보면 선생님과의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 분과 많은 곳을 찾아 다녔다. 산으로 절간으로 그리고 음악회장으로......
그런데도‘이효재 선생님’하면 당연한 일처럼 바다를 떠올리고 물빛이 그리워지는 것은 웬일일까. 어쩌면 선생님이야말로 바로 바다 같은 여성인지도 모르겠다. 광대무변하고 늠름하고 힘 있는 바다의 그 역동성. 고요하고 쓸쓸한, 깊고 깊은 그 고적감((孤寂感).
바다의 이중성을 선생님은 지니셨다. 교육가로서 또 사회 운동가로서 화려하고도 위대한 갖가지 업적의 이면에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세월이 쌓여 있었겠는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보이는 그 분의 언행이야말로 복잡한 심정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조급한 가슴을 안은 사람일수록 천천히 걸을 때가 있듯이 선생님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감추려고 언제나 그렇게 신선한 표정과 쾌활한 기질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을 것이다. 쌍계사 뒤뜰에서 철늦은 아기 단풍잎 하나를 들고 그렇듯 기뻐하시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온 산은 저물어 가는 계절 속에서 우울하게 침묵하고 있는데 아기단풍 한 잎이 기적의 보물처럼 빨강색으로 매달려 있는 것을 귀하게 들여다보시는 선생님의 두 뺨도 아기 단풍잎처럼 발그레하셨다. 그 감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만큼 사색하고 명상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내가 문득문득 바다를 그리워하는 날은 바로 문득문득 이효재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날이라는 것을 요즘 와서 깨닫는다. 답답한 가슴이 트이는 듯한 그 시원함, 그러나 결코 그 끝이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의 바다. 그런 대자연을 선생님은 닮으신 것이다. 단순한 것처럼 보이면서 한정 없이 복잡한 그 인품에서 나는 존경과 함께 매력을 느껴왔다. 연령에 있어서는 30년 정도의 간격이 있지만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고 자주 만나 뵐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바다와 같은 선생님 곁에서 나는 때로는 작은 물결이 되고 때로는 가느다란 물새 소리가 되어 선생님의 분위기에 어우러지고 싶다. 다행히도 나는 바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며 남편도 나의 바다 여행에 동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음에 우리가 바다를 찾는 것은 언제쯤일까. 별 자극이 없는 일상 속에서 이효재 선생님과 바다 그리고 나 이렇게 삼각형의 구도를 그려보는 것이 내 삶의 희망이며 기쁨이다.